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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사 자아와 파레이돌리아》 A Quasi-Self and Pareidolia

Persna 퍼스나 / 조각조각 정원정원(2023)
디렉팅: 정병찬
그래픽디자인: 이해솔
상품기획: 임주은
공간디자인: 김선규
프로그램기획: 황현주
협력 및 자문: 정재훈

참여작가: 서지우, 안민환, 이용빈
글: 이지언
사진: 양이언

《유사 자아와 파레이돌리아A Quasi-Self and Pareidolia》는 서지우, 안민환, 이용빈 작가의 미시적인 역사에서 출발해 비물질에서 물질로 향하는 과정으로 우리를 인도한다.

파레이돌리아는 개인/사회의 시각적 데이터를 기반으로 무의미한 형상에서 패턴이나 논리를 찾아내는 인간의 심리 현상 혹은 해석을 뜻한다.1 입체-자아를 조직하는 세 명의 작가는 각자가 쌓아온 유-무의미한 데이터에서 추출한 건축, 게임, 조각이나 회화에서 기인한 볼륨을 불러온다.세 명의 작가는 조각이라는 장르 아래에서 ‘파레이돌리아’를 시각적, 입체적으로 이식하거나 보는 이로 하여금 지나쳤을 법한 외견과 내형을 다시 보는 경험을 선사한다. 전시장은 개개인이 가지고 있는 데이터와 작가들의 데이터 세트의 충돌과 연대의 장으로 기능한다. 이때 로버트 스미드슨이 제시한 조각의 ‘엔트로피’2 개념이 기저에 깔리게 되는데 이는 “남아서 가용한 에너지에서 무용한 에너지”로, 질서 있는 상태에서 무질서하게 흘러가는 것, 열역학 제2법칙에서 제시되며 조각-입체의 주요 해설점으로 남아있다. 무질서하고 무용한 시각정보와 전시장에 놓인 볼륨들 사이의 유/무의식적 연결과 자의적 해석은 무수히 새롭게 갱신되는 관계를 유발한다.

먼저, 서지우 작가의 구작 <우두커니1>, <우두커니2>는 지난 전시 《For 4 witness》(온수공간, 2022)에서 선보인 “몸으로 기억하는 조각: 체득의 입방체”라는 주제 아래 본 전시의 신작과 궤를 같이한다. 건축-기능하는 공간, 그 공간을 지탱하는 요소 등을 추출하여 재건하는 방식으로 작업한다. 본 전시에서 선보이는 신작 <뚝도리>는 전시장인 성수동-뚝섬의 형성의 역사와 특수한 상황으로 구성된다. 뚝섬은 중랑천과 한강이 만나는 지점으로 모래 지형을 형성했고 ‘둑도’라는 명칭이 변하며 현재의 흔히 우리가 상용하는 ‘뚝섬’으로 자리 잡았다. ‘뚝도리’는 이러한 지형변형을 1910-20년대 후반부터 구전으로 전해온 명칭이다. 이곳은 강과 강이 만나는 위치로 고가 형태의 다리가 대부분의 지형을 받쳐주고 있었고, 지대 위로는 붉은 벽돌의 공장이 들어섰다. 작품은 이와 같은 국소적인 지리적 특수성을 도시가 빚어낸 일종의 조각-몸으로 여기며 3차원으로 무질서하게 배치한다. 작가는 ‘공간감’이라는 사적이고 미시적인 감각에 주목하며, 본인이 겪었거나 겪고 있는 도시화 혹은 현대화를 작업에 투영해 자아를 탐구한다.


퍼스나 갤러리 기획전시 “유사 자아와 파레이돌리아 ” 서문에서 발췌

︎지역 연구(Research)

뚝섬은 성수동, 자양동, 구의동 일대에 한강변으로 펼쳐진 지역과 생태공원으로 조성되어 있는 지역을 일컫는다. 조선 시대에는 뚝섬, 전관, 전교, 살곶이벌, 독도(纛島) 등으로 불리기도 하였다. 조선 태조 때부터 임금이 사냥을 하고 무예를 검열하던 곳으로, 임금의 행차 때마다 독기를 세웠다고 한다. 지형이 삼면이 강으로 둘러싸여 있어 마치 섬과 모양이 같다고 하여 뚝섬, 둑섬, 또는 한자음으로 뚝도, 둑도라고 했다.

뚝섬은 서울특별시 성동구 성수동 일대의 범람원으로, 지대가 낮아 한강에 홍수가 날 때마다 물길이 생겨 섬처럼 보였기에 섬이라고 하였다. 1980년대 초 한강종합개발사업에 의하여 한강을 직강화(直江化)하면서 남쪽의 많은 부분이 잘려 나갔고, 제방을 쌓으면서 완전한 육지화가 이루어졌다.

성수대교 붕괴 사고(聖水大橋崩壞事故)는1994년 10월 21일 한강에 위치한 성수대교의 중간 부분이 갑자기 무너져내리며 현장을 지나던 시내버스와 차량들이 그대로 추락하면서 큰 인명피해를 낸 사건이다.

성수대교
좌측 사진은 현재 성수대교의 모습이다. 성수대교는 1977년에 착공하여 1979년에 완공하였다. 당시 파격적인 하늘색 색상을 채택했고, 트러스교라는 공법을 채택하여 미관을 중요시 하였다고 한다. 이후 1994년에 상판이 붕괴되어 인명피해가 발생하였고, 다리 붕괴 사고로 인해 1995년 현대건설에서 재건설을 시작하였다.

뚝섬역은 도로와 평면교차를 피하고 지상보다 높은 위치에 설계된 고가철도이다. 고가철도는 번잡한 대도시(大都市)의 철도에서 다수의 차량을 고속도로 빈번하게 운전하기 위해서는 사람이나 자동차의 교통상의 평면 교차를 피할 필요가 있는 경우에 선로를 높이 축조하여 노면의 교통과 무관하게 차량을 운전할 수 있도록 부설한 철도를 고가 철도라고 한다.
특히 이 지역은 주로 기둥으로 세워진 고가의 다리와 철도같은 구조물이 있어 도시 지역 특징이 두드러진다.
뚝섬역 2번 출구 아래에서

성동교
성동구 행당제1동 66번지와 성수동1가 671번지 사이 중랑천에 있는 다리이다. 도성의 동쪽에 있는 다리라는 의미로 성동교라고 하였다. 1938년 뚝섬 방면이 발전되면서 살곶이다리의 폭이 통행하기에 비좁아 그 아래쪽에 새로 다리를 가설하고 성동교라 하였다. 이후 서울 동남쪽으로 이동하는 교통량이 많아지고 다리가 노화되어 행당동에서 성수동1가 방향으로 통행하는 다리와 성수동1가에서 행당동으로 향하는 다리를 신설하였다.







살곶이다리
성동구 사근동 102번지 남쪽 현재 성동교 동쪽에 위치해 있는 돌다리로서 중랑천에 놓여 있다. 살곶이 앞에 있다 하여 살곶이다리, 또는 살꽂이다리라고 하였고 한자명으로 전곶교(箭串橋)라고 한다.

조선을 건국한 이성계는 아들 이방원이 왕자의 난을 거쳐 태종으로 등극하자 함흥으로 내려가 한양으로 돌아오지 않음으로써 이방원의 등극을 부정하였다. 그 후 신하들의 간곡한 청으로 함흥에서 돌아오는 태조를 태종이 이곳 중랑천 하류 한강가에서 천막을 치고 아버지를 맞이하게 되었다. 이때 태조가 태종을 향해 활을 쏘았으나 맞히지 못하고 화살이 땅에 꽂혀 이 지역을 화살이 꽂힌 곳이라 하여 살꽂이 혹은 살곶이라 불렀다는 이야기가 전한다.


옛 뚝섬(둑도)은 중량천과 한강이 만나는 지점으로 비가 많이 내리면 두 물이 만나는 지점에 육지가 잠기거나 침수가 되었다고 전해진다. 마치 이곳은 섬처럼 보여서 뚝섬 또는 둑도라는 이름을 붙였다고 한다. 고가의 기둥으로 세워진 구조물이 들어선 이유에 대해 연구를 하였다. 지역 연구를 하며 발견한 이미지를 수집하고 기록한다.
성수동의 공장 단지들은 붉은 벽돌과 박공(삼각 뾰족한) 지붕으로 되어있는데, 이러한 공장 건출물들은 근대식 건물을 대표하기도 한다. 주로 성수동 일대에는 도시화가 시작하면서 이러한 공장들이 들어섰다.






뚝도리 (Ttukdo-ri)
2023
225 x 128 x 50 cm
시멘트, 목재, 철, 자갈, 깬돌, 화강암, 붉은 벽돌

cement, wood, steel, gravel, broken stone, granite, red brick