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년이면 강산도 변한다
20240626-20240926 



《10년이면 강산도 변한다》 전시는 우란문화재단 설립 10주년을 맞이하여 과거와 오늘의 풍경을 조망하고자 기획되었습니다.

‘10년이면 강산도 변한다’라는 말은 우리에게 친숙한 옛말로, ‘시간의 흐름 속에서 모든 것은 달라진다’는 의미를 지닙니다. ‘10’은 숫자가 가득 차고 끝나는 느낌이 있지만 동시에 새롭게 시작되고, 변화하는 지점으로 다가오기도 합니다. ‘강산’은 삶과 밀접한 관계를 지닌 생활 터전을 상징하며, 동아시아 회화사에서는 주로 자아를 성찰하는 대상으로 다루어졌습니다.

과거 문인들은 부와 명예 같은 세속적 강박으로부터 벗어나고 싶을 때 산중 은거를 택하여 산속에서 정신적인 자유를 좇았습니다. 이러한 정신은 산수화로 남겨져 감상 되어왔고, 오늘날 우리는 산수화를 보며 그 시대를 살았던 사람들의 심상과 그들이 가졌던 세상을 향한 이상을 유추할 수 있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산수’를 다룬 그림은 객관적인 자연풍경의 묘사에 그치는 것이 아니라 현실과 이상을 연결하고, 삶의 풍경을 조각하는 하나의 조형 세계라고 볼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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길드는 서로들
20240410-20240707
Weaving relations



《길드는 서로들》은 서울시립미술관의 2024년 전시 의제인 ‘건축’을 관통하는 전시로 건축의 본질적 속성을 ‘관계맺기’를 통해 가치와 경험을 만드는 행위로 파악하고 ‘관계맺기’를 다양한 개념적 접근으로 살펴보는 전시입니다. 자연 환경이라는 물리적 토대 위에서 출발하는 건축은 일차적으로 자연의 제약과 그에 대한 고려를 전제합니다. 건축은 또한 시대와 사회의 공공적 요구를 반영하면서도 자신만의 고유한 정체성을 가져야 하고, 이는 시간이 지남에 따라 주변 환경과 조건의 변화에 따라 달라지기도 합니다. 건축은 인간에 의해 창조되지만 역으로 인간에게 새로운 변화를 가져오는 등 창조력을 갖습니다. 이처럼 건축의 본질은 인간과 자연, 과거와 현재, 공동체와 개인, 물질과 비물질적인 것 등의 다양한 요소를 어떤 것에 가치를 두고 어떻게 연결하는가를 묻고 이에 답하는 행위라고 할 수 있습니다.

《길드는 서로들》은 자아를 확인하는 기본 조건이 되는 물리적인 공간, 그리고 그 공간을 매개로 발생하는 ‘관계맺기’를 다양한 방식으로 이야기하는 7명의 작가와 작품을 통해, 삶을 바라보는 시선의 변화를 유도합니다. 이를 통해 고립감과 정체성 상실을 느끼는 현대인들에게 ‘관계맺기’가 갖는 삶의 역동적인 가치를 일깨우고자 합니다. 전시제목인 '길드는 서로들'은 생텍쥐페리의 문학작품 『어린 왕자』(1943)에서 빌려온 표현으로 '관계맺기'의 본질을 담고 있습니다. ‘길든다’는 것은 시간성과 반복성, 과정을 전제하는 동시에 건축의 본질인 공동성에 바탕한 관계맺기를 의미합니다. 우리는 무엇을 길들이고, 무엇에 길들고 있을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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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마을에 사는 지우가 무엇에 귀 기울이는가
20230908-20230923
Where does Ziu in the village listen to?



전시 《이 마을에 사는 지우가 무엇에 귀를 기울이는가》는 서울시 종로구의 부암동과 홍지동, 신영동, 구기동, 평창동을 아우르는 ’세검정’을 토대로, 그곳에 거주하는 작가 자신이 발견한 건축과 구조물의 유래 또는 과거의 흔적을 작품으로 엮어내고 있다.본래 ‘세검정’은 1623년 인조반정 당시 ‘검을 씻은 정자’라는 말에서 유래한 것으로, 작가는 지역의 이면에 숨은 시대성과 장소성을 탐구하여 그 지역의 공간적 특성을 재구성하고 있다.

서지우는 역사와 관련된 유물, 유적, 건조물, 건축 양식 또는 조형적 구조에 대해 관심을 기반으로, 시각적 형태에 주목하여 역사적 사건과 현 시대의 동형을 이끌어내는 조각을 보여줍니다. 2022년도 서울 온수공간에서 진행했던《4OR witness》부터, 2022. 토탈미술관에서의《열 개의 달과 세개의 터널》그리고 2023. 서울 퍼스나에서 열린《유사 자아의 파레이돌리아》까지의 작가는 흩어진 지역의 이야기와 역사를 재해석한 작품들을 전시 공간으로 가져와 새롭게 해석한 작품들을 조립하여 다시 축조하여 세웁니다. 이렇게 역사와 시각적 형태를 결합한 조각 작품을 통해 지역과 건축의 역사를 재해석하는 그의 작품은 공간:일리가 위치한 신영동 삼거리부터 세 개의 터널까지 다양한 이야기에 귀를 기울이고 담아내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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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사 자아와 파레이돌리아
20230520-20230529
A quasi-self and pareidolia




《유사 자아와 파레이돌리아A Quasi-Self and Pareidolia》는 서지우, 안민환, 이용빈 작가의 미시적인 역사에서 출발해 비물질에서 물질로 향하는 과정으로 우리를 인도한다.

파레이돌리아는 개인/사회의 시각적 데이터를 기반으로 무의미한 형상에서 패턴이나 논리를 찾아내는 인간의 심리 현상 혹은 해석을 뜻한다.1 입체-자아를 조직하는 세 명의 작가는 각자가 쌓아온 유-무의미한 데이터에서 추출한 건축, 게임, 조각이나 회화에서 기인한 볼륨을 불러온다.세 명의 작가는 조각이라는 장르 아래에서 ‘파레이돌리아’를 시각적, 입체적으로 이식하거나 보는 이로 하여금 지나쳤을 법한 외견과 내형을 다시 보는 경험을 선사한다. 전시장은 개개인이 가지고 있는 데이터와 작가들의 데이터 세트의 충돌과 연대의 장으로 기능한다. 이때 로버트 스미드슨이 제시한 조각의 ‘엔트로피’2 개념이 기저에 깔리게 되는데 이는 “남아서 가용한 에너지에서 무용한 에너지”로, 질서 있는 상태에서 무질서하게 흘러가는 것, 열역학 제2법칙에서 제시되며 조각-입체의 주요 해설점으로 남아있다. 무질서하고 무용한 시각정보와 전시장에 놓인 볼륨들 사이의 유/무의식적 연결과 자의적 해석은 무수히 새롭게 갱신되는 관계를 유발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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