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마을에 사는 지우가 무엇에 귀 기울이는가 Where does Ziu in the village listen to? (2023)
리뷰어. 문현정 (독립 큐레이터)
서지우는 도시의 역사와 건축, 흔적에 대한 관심을 바탕으로 과거가 남긴 구조를 현시대의 동형으로 이끌어내는 조각을 선보여왔다. 그의 조각은 과거의 유물이나 유적, 건조물, 건축 양식을 레퍼런스 삼고 있으며, 그것이 가지는 조형적 구조와 시대적 형상을 토대로 역사의 이야기를 재해석 해낸다. 그가 도시의 건축에 관심을 가지는 이유는 건축가를 꿈꿔왔던 그의 과거에서부터 기인한다. 정확히는 건축물을 유지하도록 만드는 지지체의 형식을 고민하는 작업은 곧 조각을 쌓고, 세우고, 유지시키는 구조적 유사성을 탐구하는 것으로 이행한다. 이를 가능하게 하는 골조, 이를테면 수직과 수평의 형태나 내부와 외부의 이분적 구성은 작가의 조형 안에서도 중요한 위치로 자리매김하고 있다.
작가의 관심을 사로잡는 것은 지금의 건축이 아닌 과거의 건축이다. 오늘날 세워지는 건축물은 여러 도시 계획과 결부되어 만들어진 산업화의 산물로, 그곳에 원래 자리했던 과거의 것을 상쇄하고 잔흔만을 남기게 되었다. 작가는 변화하는 풍경 속에 여전히 남아있는 과거의 흔적에서 노스탤지어를 느끼고, 그 형상을 다시금 소화하고 있는 조각으로 세워낸다. 이러한 그의 관심은 장소특정적 리서치로 이어진다. 이에 서울 ‘세검정’에 터전을 잡은 작가는 그곳을 중심으로 자신의 주변부에 위치한 흔적을 탐구하기 시작하였다. 그렇기에 2023년 공간 일리에서 진행된 그의 개인전 «이 마을에 사는 지우가 무엇에 귀 기울이는가»는 종로 ‘세검정'에서 출발한다.
대중교통으로는 방문하기 어려운 곳, 조용하고 한적한 분위기를 자아내는 곳. ‘세검정’은 서울 종로구의 부암동과 홍지동, 신영동, 구기동, 평창동을 아우르는 지역으로, 서울의 중심부에서 조금 떨어진 구역에 자리하고 있다. 북악산과 북한산, 인왕산에 둘러싸여 있는 세검정은 세 개의 터널로 둘러싸여 있다. 지역을 넘나들기 위한 관문, 안과 밖을 결정하는 세 개의 터널은 세검정이라는 작은 지역의 특수적 지역성을 만들어내는 경계로 작용했을 것이다. 지명의 뜻은 1623년 조선 인조반정 당시 광해군 폐위를 논하는 과정에서 ‘검을 씻은 정자‘라는 뜻에서 유래한다. 부정한 것을 씻어내고 새로운 출발을 도모했던, 오랜 역사를 함께한 세검정은 그곳에 함께 자리한 공간 일리의 특색과도 공명한다. 오래된 옛 가옥을 전시공간으로 개조한 일리는 안채와 사랑채를 나누었던 과거의 건축 형태와 전 주인의 사용 흔적을 그대로 간직한 채로 새로운 공간성을 만들어내고 있다. 이에 작가는 자신이 터를 잡은 세검정 이면에 숨은 지역성을 공간 일리라는 특수한 장소에 세워내기 위한 조각을 제작한다.
쌓아 올리고, 세우고, 유지하기. 그의 조각을 처음으로 바라보았을 때 떠오르는 말들이다. 과거 건축물에 사용된 재료를 그대로 차용하고 있는 조각의 물성은 유동적인 시간을 조각에 녹여내며, 그것이 놓인 공간과 조응하는 형태를 드러내고 있다. 전시는 크게 세 가지 구성으로 이루어진다. 세검정을 둘러싼 세 개의 터널을 시각화한 조각, 과거 건축에 활용된 형식과 물성을 가시화한 ‹몸뚱이›와 ‹푸데기›, ‹우두커니› 조각, 그리고 역사적 인물의 서사를 드러내는 ‹차일암 기둥›이 그것이다.
세검정의 유입로가 되어주었던 세 개의 터널인 자하문 터널과 구기 터널, 그리고 북악 터널의 형태는 작품 ‹자하문 (Jahamun)›과 ‹구기 (Gugi)›, 그리고 ‹북악 (Bugak)›으로 재구성된다. 세 터널의 현장을 답사한 후 발견된 재료와 형태적 특징은 작가에 의해 시각적 요소로 포착되어 자리한다. 조각의 하단에는 자동차를 타고 터널 내부를 지날 때 스쳐 지나가는 점멸의 빛이 표현되어 있다. 유지오 작가와 협업한 사운드는 북악산과 북한산, 인왕산에 위치한 사찰에서 읊어지는 불경을 연상시키는 소리에 영감을 받아 제작되었다.
방 한편을 채운 ‹우두커니›는 과거 작가가 지역을 연구하기 시작했던 시점에서 발견한 옹벽의 형태를 차용하고 있다. 세검정에서 유독 많이 발견되기도 하는 축대는 토사가 무너지는 것을 방지하기 위해 쌓아 올려진 벽으로, 남겨진 콘크리트와 돌의 지층이 만들어내는 이미지는 시간의 축적을 상징하기도 한다. 여러 개로 펼쳐내어진 조각과 하나로 합쳐져 우두커니 세워진 조각의 두 형태로 구성된 작품은, 도시의 역사를 담은 시간의 퇴적과 쌓여 올라가는 과정에서 생기는 시대의 단면을 조합해 내고 있다.
‹몸뚱이› 조각 역시 과거 지역 리서치에서 기반한 것으로, 1950년 한국전쟁 이후 도시화가 진행되는 과정에서 만들어진 벙커를 차용하고 있다. 산을 중심으로 집이 형성된 세검정에서 피난처로 활용되었던 군사시설물과 산병호의 역할로 만들어진 반지하와 지하의 흔적은 여기저기 남아 그 흔적을 간직하고 있다. 시멘트와 목재, 드문드문 드러나는 벽지와 전선관을 재료로 활용한 작품의 질감은 오래된 세월의 흔적을 간직한 구조물을 대표하기 위한 조각으로 뭉쳐진다.
마당을 가로지르는 ‹차일암 기둥›에는 윤동주의 시와 정조의 시가, 천수경 등의 구절이 배치되어 있다. 검게 칠해진 각목은 차일암으로, 세검정 정자 아래에 있는 계곡 암반의 이름에서 따온 것이다. 과거 정조와 정약용 등의 문신은 ‘세검정'이라는 정자에 앉아 시를 쓰고는 했다고 한다. 각 시의 의미는 그들이 바라보던 세검정에서 유래되었고, 그 구절은 작가의 조각 위에 다시 새겨지고 있다.
세검정의 이면에 숨은 시대성과 장소성을 탐구하고 있는 서지우의 작품은 다시 공간 일리 위에 놓여짐으로써 흔적을 재구성한다. 과거의 건축적 조형, 그 속에 담긴 연혁과 자취를 따라가고 있는 작품은 어느새 현대 조형의 언어로 재편되어 하나의 기념비처럼 현현한다. 조각의 물성이, 그리고 형태가 드러내는 감각은 지금의 시점에서 다시 되돌아보는 과거와-다시 과거가 발화하는 궤적을 구체화하며, 조각이 말하는 시대의 이야기를 들려주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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