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지우의 도시, 신주의 조각 (2025)

 글. 모희


그러므로 우리들이 몽상을 살았던 장소들은 새로운 몽상 가운데 스스로 복원된다. 과거의 거소(居所)들이 우리들 내부에 불멸하게 남아 있는 것은, 바로 그것들의 추억이 몽상처럼 되살아지기 때문인 것이다.

도시를 걸으며 마주하는 것은 어느 시대의 웅성거림이다. 대만에서 가장 오래된 도시 중 하나인 신주에는 덧대어진 시간의 겹이 빼곡히 노출되어 있다. 《길 위의 빨간 맛》은 서지우가 신주를 걸으며 접한 도시의 정조를 한시적으로 마련된 야외 전시장에 포개어 놓는다. 낡은 외벽과 방범용 창틀, 도로를 가득 메운 오토바이, 화려하게 장식된 사찰과 곳곳에 새겨진 붉은 색의 정경들. 이곳에서 작가가 체득한 것은 저기 바깥에 놓인 낯선 경관으로서의 도시가 아닌, 몽상과도 같은 정서의 흐름이다. 내면으로 들어선 풍경은 때이른 향수를 경유하여 기억과 상상이 응축된 조각이 된다. 재구성된 장소와 사물은 기입된 목적에서 풀려나 이미지의 시원이자 상상의 원형으로 전시장에 놓인다.

도시의 물질적 축을 가로지르는 것은 태고의 기억으로부터 건너온 이미지의 울림이다. 흩어질 감각과 달리 내면에 머무는 울림은 이국의 풍경을 자신 안에 머물도록, 머묾으로 하여금 스스로를 알아보도록 한다. 때문에 서지우가 신주를 거닐며 얻는 것은 낯선 장소에서의 발견일 뿐 아니라, 자신 안에서의 발견이기도 하다. 이를테면 그는 야시장에 놓인 아케이드 게임기와 아이들의 모습에서 게임에도 의식이 있다고 여겼던 자신의 어린 시절을 본다. 직접 겪지 않은 장면들이 언젠가 마주한 것처럼 다가오는 까닭이 여기에 있다. 우연히 주어졌던 과거의 삶은 맞닥뜨린 장소와 회상 가운데에 목하 창조적으로 변화해 간다. 이때에 풍경은 상이한 시간과 장소에서 서지우가 조각할 존재의 이미지가 된다.

한편 회상과 상상을 거쳐 구축된 조각은 산물에서 사물로 거듭나는 과정을 통해 현재에 도착한다. 서지우는 신주라는 도시를 이루는 사람과 사물, 도처에 깃든 염원과 상서로움을 재료 삼아 조각한다. 이는 납득할 만큼 파고든 뒤 골조를 구상하고 세부를 다듬는 즉흥성 아래 이루어지는데, 여기서 즉흥성은 축적된 정서가 솟아오르는 방식으로 우발적인 것과는 구분된다. 조각의 형태는 계획이 아닌 생성의 과정 속에서, 마땅히 그렇게 보아야 하는 산물이 아닌 그것인 바 그대로의 사물로 드러난다. 나아가 기억과 몽상, 상상력의 현시적 장소로서 조각은 현행된 시간 위에 모든 행해진 것들의 기념비가 된다. 그러므로 《길 위의 빨간 맛》에서 우리가 경험하는 것은 어느 시대를 거쳐 지금 막 이곳에 도착한 웅성거림이다. 이 현행성으로부터 서지우의 조각은 또다른 울림으로, “스스로 복원”된 추억으로 도시를 살아갈 것이다.



 가스통 바슐라르, 곽광수 역, 『공간의 시학』, 동문선, 2023, p.95.
 “달리 말해, 우리는 사물에서 우리가 찾고자 하는 어떤 것을 찾아내는 거싱 아니라 우리가 어떻게 찾는가를 찾아낸다.” 빌렘 플루서, 김태희·김태한 역, 『사물과 비사물』, 필로소픽, 2023, 93. 
바슐라르, 앞의 책, p.15. 
플루서, 앞의 책, p.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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