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기억을 쌓는 사람 (2024) 글. 정희윤 서지우는 자신이 발 딛어온 장소들을 세심하게 들여다보고 그곳에 담긴 이야기에 관심을 기울인다. 주로 도시 건축물의 골조와 형태에서 영감을 받아 조각을 쌓아 올리며 최근에는 작업 방식과 매체를 다양하게 확장해 나가고 있다. 첫 번째 개인전《이 마을에 사는 지우가 무엇에 귀 기울이는가》에서 작가가 살고 있는 지역의 구조물을 탐구한 결과물을 조각으로 표현했다면, 이번 개인전에서는 IMF 서울이 위치한 도봉구 쌍문동을 저벅저벅 거닐며 마주한 아파트 단지의 풍경과 동네에 깃들어 있는 흔적을 조각, 사진, 드로잉으로 옮겨낸다. 그는 지독한 관찰자이다. 그래서 줍는다. '파밍(Farming)'이 온라인 게임에서 필요한 자원이나 아이템을 얻기 위하여 반복적으로 수집하는 활동을 의미하는 것처럼, 작가는 주변을 관찰하고 그곳의 흔적들을 찾아내기 위하여 끊임없이 '파밍' 한다. 짙은 노스텔지어를 자아내는 90년대생 아파트를 카메라로 포착하거나 꾸깃꾸깃 구겨진 상태로 돌담 사이에 끼워진 오래된 신문지를 끄집어내 외투 주머니에 넣는다. 그가 주목하는 것은 단순히 시각적인 요소가 아니라, 장소가 품고 있는 역사와 그곳에서 살아온 사람들의 흔적이다. 마치 고고학자가 흙 속에서 조각들을 발굴하듯, 서지우는 일상의 사소한 요소들을 채집하고 자신만의 방식으로 재구성한다. 그렇게 현장에서 주워 올린 소중한 재료는 시멘트와 함께 반죽하여 시간을 잠시 얼려둔다. 작가는 그것을 하나의 '파츠(parts)'라고 부른다. 사람들이 어떤 공간에 대하여 저마다 다른 기억을 품고 살아가듯이 파츠에는 이렇게 각기 다른 시간과 기억이 담겨 있다. 그리고 그 파츠들을 켜켜이 쌓아 올리면 하나의 조각이 된다. 주어진 도면에 따라 바닥에서부터 각재를 교자하여 목조 주택의 뼈대를 만들던 그가, 이제는 가장 아래에서부터 골조를 단단히 세우고 그 위에 파츠를 쌓아간다. 그렇게 땅에 떨어져 있던 기억의 파편들을 주워 자근자근 축적해 나가면 아파트 하나가 뚝딱 만들어지고, 그것들을 한데 모으면 거대한 아파트 단지가 된다. 조각들은 전시장 방 한 켠을 빼곡하게 재운 상태로 또 다른 누군가의 주변을 부유하고 있는 추억들이 그 위에 차분히 내려앉아 한 층 덧대어 지기를 기다린다. 서지우는 그 앞에 가만히 서서 서울로 상경해 지내온 날들을 떠올린다. 사회 초년생이 아무런 연고도 없는 서울 땅에 정작해 보겠다고 적당한 가격의 반지하 월세방을 찾아 배회했던 기억. 어쩌면 그 기억의 모서리에는 아파트 도면이 무수하게 늘어져 붙어있는 부동산 한쪽 벽면이 남아 있었을지도 모르겠다. 그것은 목수였던 과거의 정체성과 얽혀서, 그에게 건축물의 뼈대와 다름없는 수직선과 수평선이 서로 교차하고 중첩되는 드로잉을 그려낸다. 그리하여 작가는 쌍문동을 둘러싼 여러 세대의 자취를 자신만의 방식으로 계속해서 줍고 포개고 다시 조립하고 배열한다. 이렇게 쌓아 올린 기억들은 다른 곳으로 새어 나가지 못하도록 작업 안에 꽉 붙들어 놓는다. |
2024. [길드는 서로들] 시간과 공간의 프로필_기획/글. 방소연(학예연구사) |
시간과 공간의 프로필 Profile of Time and Space (2024)
글. 방소연 (학예연구사)
4-5년 전인가에는 무슨 역사 투어라고 해서 이 동네의 장소 몇 개를 하나의 코스로 묶어 투어하는 프로그램으로 방문객들이 나를 찾았다. 그 투어는 사당역 근처의 도당터(느티나무신을 모시던 곳)에서 시작해 나를 거쳐 서울 안에 유일하게 있는 백제의 도자기 가마터, 조선 중기의 문신 이경직의 묘역 등을 둘러보는 코스였다. 내가 있는 사당역 주변은 현재 서울에서 교통의 요지이면서 동시에 곳곳에서 켜켜이 쌓인 역사의 흔적을 발견할 수 있다.
사실 인간이 살고 있는 주변을 조금만 눈여겨보면 그 안에서 역사와 사회, 누군가의 흔적과 이야기를 읽어낼 수 있다. 예를 들어 내가 옮겨질 때 다락공간의 나무 기둥과 대들보를 해체하고 조립하는 과정에서, 나무가 썩거나 약한 부분은 새로운 목재로 교체하기도 했는데 지금도 이 부분은 색깔로 차이가 난다. 이처럼 건축물은 다양한 단서들을 갖고 있고 이것은 유심히 보는 자에게만 보인다.
사회초년생인 20대 초반의 S는 아르바이트 일을 하며 정착할 직업을 알아보는 중이다. 지방에서 서울로 올라와 반지하에 월셋방을 구했다. 오랫동안 환기가 제대로 되지 않아 곰팡이가 슨 벽지를 뜯어내니 울퉁불퉁하게 시공된 콘크리트 표면이 드러났다. 거칠고 무식한 느낌, 수직 수평도 맞지 않는 벽과 바닥. S는 거칠고 튀어나온 콘크리트 벽이 마치 배불뚝한 쌀 포대 같다고 생각한다. 인터넷으로 검색해보니 1970년대 혹시 모를 전쟁 시를 대비해 지하에 방공호를 필수로 하는 건축법 규정이 만들어졌는데, 그것이 반지하 공간들이 생겨나게 된 시작이라 한다. 반지하에서 창문은 최대한 지면에 가까이 가고자 사람의 눈높이보다도 높게 달려있다. 그래서 종종 원치 않는 쾌쾌한 매연이나 불쾌한 하수구 냄새를 맡아야 한다. 그래도 S가 톡톡이라 이름 붙인 동네 길고양이와의 눈맞춤은 작은 즐거움이다.
글. 방소연 (학예연구사)
4-5년 전인가에는 무슨 역사 투어라고 해서 이 동네의 장소 몇 개를 하나의 코스로 묶어 투어하는 프로그램으로 방문객들이 나를 찾았다. 그 투어는 사당역 근처의 도당터(느티나무신을 모시던 곳)에서 시작해 나를 거쳐 서울 안에 유일하게 있는 백제의 도자기 가마터, 조선 중기의 문신 이경직의 묘역 등을 둘러보는 코스였다. 내가 있는 사당역 주변은 현재 서울에서 교통의 요지이면서 동시에 곳곳에서 켜켜이 쌓인 역사의 흔적을 발견할 수 있다.
사실 인간이 살고 있는 주변을 조금만 눈여겨보면 그 안에서 역사와 사회, 누군가의 흔적과 이야기를 읽어낼 수 있다. 예를 들어 내가 옮겨질 때 다락공간의 나무 기둥과 대들보를 해체하고 조립하는 과정에서, 나무가 썩거나 약한 부분은 새로운 목재로 교체하기도 했는데 지금도 이 부분은 색깔로 차이가 난다. 이처럼 건축물은 다양한 단서들을 갖고 있고 이것은 유심히 보는 자에게만 보인다.
사회초년생인 20대 초반의 S는 아르바이트 일을 하며 정착할 직업을 알아보는 중이다. 지방에서 서울로 올라와 반지하에 월셋방을 구했다. 오랫동안 환기가 제대로 되지 않아 곰팡이가 슨 벽지를 뜯어내니 울퉁불퉁하게 시공된 콘크리트 표면이 드러났다. 거칠고 무식한 느낌, 수직 수평도 맞지 않는 벽과 바닥. S는 거칠고 튀어나온 콘크리트 벽이 마치 배불뚝한 쌀 포대 같다고 생각한다. 인터넷으로 검색해보니 1970년대 혹시 모를 전쟁 시를 대비해 지하에 방공호를 필수로 하는 건축법 규정이 만들어졌는데, 그것이 반지하 공간들이 생겨나게 된 시작이라 한다. 반지하에서 창문은 최대한 지면에 가까이 가고자 사람의 눈높이보다도 높게 달려있다. 그래서 종종 원치 않는 쾌쾌한 매연이나 불쾌한 하수구 냄새를 맡아야 한다. 그래도 S가 톡톡이라 이름 붙인 동네 길고양이와의 눈맞춤은 작은 즐거움이다.
이 마을에 사는 지우가 무엇에 귀 기울이는가 Where does Ziu in the village listen to? (2023)
리뷰어. 문현정 (독립 큐레이터)
서지우는 도시의 역사와 건축, 흔적에 대한 관심을 바탕으로 과거가 남긴 구조를 현시대의 동형으로 이끌어내는 조각을 선보여왔다. 그의 조각은 과거의 유물이나 유적, 건조물, 건축 양식을 레퍼런스 삼고 있으며, 그것이 가지는 조형적 구조와 시대적 형상을 토대로 역사의 이야기를 재해석 해낸다. 그가 도시의 건축에 관심을 가지는 이유는 건축가를 꿈꿔왔던 그의 과거에서부터 기인한다. 정확히는 건축물을 유지하도록 만드는 지지체의 형식을 고민하는 작업은 곧 조각을 쌓고, 세우고, 유지시키는 구조적 유사성을 탐구하는 것으로 이행한다. 이를 가능하게 하는 골조, 이를테면 수직과 수평의 형태나 내부와 외부의 이분적 구성은 작가의 조형 안에서도 중요한 위치로 자리매김하고 있다.
작가의 관심을 사로잡는 것은 지금의 건축이 아닌 과거의 건축이다. 오늘날 세워지는 건축물은 여러 도시 계획과 결부되어 만들어진 산업화의 산물로, 그곳에 원래 자리했던 과거의 것을 상쇄하고 잔흔만을 남기게 되었다. 작가는 변화하는 풍경 속에 여전히 남아있는 과거의 흔적에서 노스탤지어를 느끼고, 그 형상을 다시금 소화하고 있는 조각으로 세워낸다. 이러한 그의 관심은 장소특정적 리서치로 이어진다. 이에 서울 ‘세검정’에 터전을 잡은 작가는 그곳을 중심으로 자신의 주변부에 위치한 흔적을 탐구하기 시작하였다. 그렇기에 2023년 공간 일리에서 진행된 그의 개인전 «이 마을에 사는 지우가 무엇에 귀 기울이는가»는 종로 ‘세검정'에서 출발한다.
대중교통으로는 방문하기 어려운 곳, 조용하고 한적한 분위기를 자아내는 곳. ‘세검정’은 서울 종로구의 부암동과 홍지동, 신영동, 구기동, 평창동을 아우르는 지역으로, 서울의 중심부에서 조금 떨어진 구역에 자리하고 있다. 북악산과 북한산, 인왕산에 둘러싸여 있는 세검정은 세 개의 터널로 둘러싸여 있다. 지역을 넘나들기 위한 관문, 안과 밖을 결정하는 세 개의 터널은 세검정이라는 작은 지역의 특수적 지역성을 만들어내는 경계로 작용했을 것이다. 지명의 뜻은 1623년 조선 인조반정 당시 광해군 폐위를 논하는 과정에서 ‘검을 씻은 정자‘라는 뜻에서 유래한다. 부정한 것을 씻어내고 새로운 출발을 도모했던, 오랜 역사를 함께한 세검정은 그곳에 함께 자리한 공간 일리의 특색과도 공명한다. 오래된 옛 가옥을 전시공간으로 개조한 일리는 안채와 사랑채를 나누었던 과거의 건축 형태와 전 주인의 사용 흔적을 그대로 간직한 채로 새로운 공간성을 만들어내고 있다. 이에 작가는 자신이 터를 잡은 세검정 이면에 숨은 지역성을 공간 일리라는 특수한 장소에 세워내기 위한 조각을 제작한다.
쌓아 올리고, 세우고, 유지하기. 그의 조각을 처음으로 바라보았을 때 떠오르는 말들이다. 과거 건축물에 사용된 재료를 그대로 차용하고 있는 조각의 물성은 유동적인 시간을 조각에 녹여내며, 그것이 놓인 공간과 조응하는 형태를 드러내고 있다. 전시는 크게 세 가지 구성으로 이루어진다. 세검정을 둘러싼 세 개의 터널을 시각화한 조각, 과거 건축에 활용된 형식과 물성을 가시화한 ‹몸뚱이›와 ‹푸데기›, ‹우두커니› 조각, 그리고 역사적 인물의 서사를 드러내는 ‹차일암 기둥›이 그것이다.
세검정의 유입로가 되어주었던 세 개의 터널인 자하문 터널과 구기 터널, 그리고 북악 터널의 형태는 작품 ‹자하문 (Jahamun)›과 ‹구기 (Gugi)›, 그리고 ‹북악 (Bugak)›으로 재구성된다. 세 터널의 현장을 답사한 후 발견된 재료와 형태적 특징은 작가에 의해 시각적 요소로 포착되어 자리한다. 조각의 하단에는 자동차를 타고 터널 내부를 지날 때 스쳐 지나가는 점멸의 빛이 표현되어 있다. 유지오 작가와 협업한 사운드는 북악산과 북한산, 인왕산에 위치한 사찰에서 읊어지는 불경을 연상시키는 소리에 영감을 받아 제작되었다.
방 한편을 채운 ‹우두커니›는 과거 작가가 지역을 연구하기 시작했던 시점에서 발견한 옹벽의 형태를 차용하고 있다. 세검정에서 유독 많이 발견되기도 하는 축대는 토사가 무너지는 것을 방지하기 위해 쌓아 올려진 벽으로, 남겨진 콘크리트와 돌의 지층이 만들어내는 이미지는 시간의 축적을 상징하기도 한다. 여러 개로 펼쳐내어진 조각과 하나로 합쳐져 우두커니 세워진 조각의 두 형태로 구성된 작품은, 도시의 역사를 담은 시간의 퇴적과 쌓여 올라가는 과정에서 생기는 시대의 단면을 조합해 내고 있다.
‹몸뚱이› 조각 역시 과거 지역 리서치에서 기반한 것으로, 1950년 한국전쟁 이후 도시화가 진행되는 과정에서 만들어진 벙커를 차용하고 있다. 산을 중심으로 집이 형성된 세검정에서 피난처로 활용되었던 군사시설물과 산병호의 역할로 만들어진 반지하와 지하의 흔적은 여기저기 남아 그 흔적을 간직하고 있다. 시멘트와 목재, 드문드문 드러나는 벽지와 전선관을 재료로 활용한 작품의 질감은 오래된 세월의 흔적을 간직한 구조물을 대표하기 위한 조각으로 뭉쳐진다.
마당을 가로지르는 ‹차일암 기둥›에는 윤동주의 시와 정조의 시가, 천수경 등의 구절이 배치되어 있다. 검게 칠해진 각목은 차일암으로, 세검정 정자 아래에 있는 계곡 암반의 이름에서 따온 것이다. 과거 정조와 정약용 등의 문신은 ‘세검정'이라는 정자에 앉아 시를 쓰고는 했다고 한다. 각 시의 의미는 그들이 바라보던 세검정에서 유래되었고, 그 구절은 작가의 조각 위에 다시 새겨지고 있다.
세검정의 이면에 숨은 시대성과 장소성을 탐구하고 있는 서지우의 작품은 다시 공간 일리 위에 놓여짐으로써 흔적을 재구성한다. 과거의 건축적 조형, 그 속에 담긴 연혁과 자취를 따라가고 있는 작품은 어느새 현대 조형의 언어로 재편되어 하나의 기념비처럼 현현한다. 조각의 물성이, 그리고 형태가 드러내는 감각은 지금의 시점에서 다시 되돌아보는 과거와-다시 과거가 발화하는 궤적을 구체화하며, 조각이 말하는 시대의 이야기를 들려주고 있다.
2022. [4OR Witness] 몸으로 기억하는 조각_글. 이지언 |
몸으로 기록하는 조각 Archiving Living Sculptures (2022)
글. 이지언
서지우는 레디메이드 Ready-made와 비교적 깎거나 갉아내기 쉬운 아이소핑크, 스타이로폼(XPS)등의 재료 Material을 지양하며, 추상-구상의 조형을 탐구한다. 작가의 추상개념은 한국의 근현대 공간의 공예적 특징과 보편성의 미학을 짚어내며 본 전시에서는 이를 인류세의 맥락에서 관찰한다.
전시된 <푸데기>, <몸뚱이>, <우두커니 1-2>는 작가의 공간에 대한 ‘연대기’적 해석이 돋보인다. 단조로워 보일 수 있는 직사각공간의 타워형 조각들은 바톰 투 탑 Bottom to top으로 아래에서부터 쌓아 올린 퇴적의 시간을 보여주며 시대의 단면을 불러온다. 이는 작가의 ‘기록 보존’, ‘아카이빙’의 조형적 연구를 선보인다. 이는 공간구성의 표현 특성에서 드러나는 궤를 같이하는데 표피적, 경험적, 구축적 측면의 함축성, 문화성, 전일성, 이미지성1으로 볼 수 있다.
작품의 표피는 크게 거푸집 혹은 벽으로 간주할 수 있는데, 이는 앞서 언급한 퇴적 혹은 지층과는 다른 의미로 한국 근현대사를 돌이켜본다. <우두커니 1-2>는 ‘축대’의 편집본이다. 토사(土砂)가 무너지는 것을 방지하기 위하여 쌓아 올린 것으로 벽의 이미지를 차용한다. 먼저 ‘벽’이함의하는 바는 다양하다. 물질적으로 공간의 둘레를 막는 수직 건조물. 일상적, 은유적으로 극복하기 어려운 한계나 비유적으로 이르며 교류의 단절을 일컫는다. 역사적으로 벽은 기록과 공유의 장이였으며 최초의 시각 기호를 새기고 당대의 문화, 해당 공간의 미시사를 단편적으로 보여준다. 작품에서 드러나는 벽의 형태는 우리가 지나온 ‘벽’을 기록함을 넘어 앞으로의 벽과 그가 갈라지는 틈새를 비추며, 한계와 단절를 훼손함으로써 미래로의 도약과 비판과 고찰을 나타낸다.
작업의 전반은 과거-지층과 현대-고층의 이미지가 어떻게 변화해왔는지를 조망하고 예측한다. 예를 들어, 전체적인 작업은 반지하의 역사와 기능에 주목하는데 군사시설인 방공호와 그 구조를 견인하여 동시대 주거 형태에도 삽입한다. 이때, 서지우의 작업은 기이한 전복 Upheaval을 목격하는데 과거 관료제의 상위부가 필요시 차지했던 공간이 탈관료제의 수평적 구조 아래에서도 소외된 층위가 차지하게끔 설계된다. 작가는 현상의 이미지들을 차용해 기록하며 전복 Upheaval의 전복 Upheaval을 기대하며 단순한 조형화에서 그치지 않고 해석과 상상의 연장을 유도한다.
서지우는 본 전시에서 어떻게 기록하였나? 기록2이란 사실을 바탕으로 하는 증거와 정보이며 고정적 재현물로써의 역할을 하게 되었다. 작가는 고정적이기보다 활동적이며 다변화된 기록을 꾀하고, 사료 너머의 가치를 획득하고자 한다. 조각이라는 몸 Bodies은 살아있고 그러므로 유동적이며 혼성적이다. 종결된 이야기가 아닌 생성되는 내러티브를 써내려가며, 이는 작가가 들려준 그리고 보여줄 새로운 형태의 기록물로 자리할 것이다.
1 이설희, 김주연, 이종세 <공간구성을 위한 재료의 비(非)물질적 표현특성에 관한 연구> 한국공간디자인학회, 2012, vol.7, no.2, pp.127 - 137
2 설문원, <기록이란 무엇인가?-활동의 고정적 재현물로서의 개념 탐구>, 기록학 연구, 2019, vol.59, pp. 5 - 46
ZIU ZIU \ Ziu Suh
Research Archive Texts Press
→ BIO / CONTACT
→ AELIER
© 2022 - 2025 Ziu Suh, website by ZIUSUH♡